고려대 국제하계학교 한국현대사(Modern History of Korea) 강의에서 강의를 맡은 앤더스 칼슨(런던대)교수가 우리의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을 비롯한 윤봉길, 이봉창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다. 또한 수업에 앞서 학생들에게 인터넷으로 배포한 자료에도 김구 선생의 사진에 테러리스트 그룹(Terrorist groups)이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보다가 욱 하면서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바로 며칠 전 용인의 한 개용품점 주인이 가게 간판에 중국의 천안문 중앙에 있는 모택동의 자리에 개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걸어놨다고 중국외교부에서 우리 대사관에 항의를 해서 외교문제로 비화했다는 기사를 봤다.. 한국 대학원에 유학 중인 중국인이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애견센터 간판이 중국을 모욕한다는 내용의 글을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려서 중국에서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문제의 사진에는 천안문의 중앙에 있는 모택동 자리에 흰색 진돗개가, 천안문 왼쪽에 있는중화인민공화국만세라는 구호 대신 용인애견종합백화점으로, 오른쪽세계인민대단결만세라는 구호는 상호인 일부가 지워져 ○○개마을로 되어 있었다. 주인은 외교통상부에서 전화를 받았다며 그냥 웃자고 한 것인데 우리 정부가 곤란하다고 해서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문제가 된 용인의 애견센타 간판사진


앞의 사례와 직접 비교는 곤란하겠지만 우리나라의 그래도 민족의식이 있다는 대학교의 강의실에서 어떻게 우리나라 국부라 일컫는 김구선생을 테러리스트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가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학교측에서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재빨리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단지 그 교수가 얘기하는 대로 단어의 선택이 문제가 아니다. 남의 나라에 와서 그 나라의 역사를 가르친다면 그 나라에서 그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일반 대중들이 그 인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인지한 다음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내가 아는대로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웃자고 한 천안문 합성사진에 중국인들이 발끈하지 않는가? 우리는 이해가 잘 안되지만 중국인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면 우리의 행동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학교 강단에서 벌어진 이 일은 더 심각한 일이다. 아마도 일본의 시각과 책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배운 학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학교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을 하고 내용을 스캔을 해야지 이렇게 중요한 사항을 아무런 조치없이 그냥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해외에서 온 교포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 교수는 단지 단어의 선택문제라고 했다는데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미국의 워싱턴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도 단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교수의 시각에는 단지 김구선생만 테러리스트인 것 같다. 어떻게 한국역사를 검증이 안된 외국인에게 가르치게 하는지 학교의 의도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고대 국제하계학교 관계자는앤더스 칼슨 교수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 분이시고 한국사에 대해서 강의를 할만한 충분한 요건을 갖춘 분이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고려대의 생각인지 고려대 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김구선생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냐고

 

 설탕은 다이어트 및 성인병에 가장 큰 적으로 알고 있다. 여기 설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뉴스가 있어서 소개한다. 무식한 서민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설탕은 인류의 적으로 치부하던 왔다 갔다 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가 못 미덥기는 하다. 과학자들이 연구와 기자들의 소설 중  어떤 것이 더 못 믿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그래도 모든 음식에서 설탕을 빼야 한다는 말보다 듣기는 좋다. 운동이 병행된다면 적당한 양의 설탕을 섭취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인데      

 

펌 신공 from 해럴드생생뉴스


다이어트의 적’으로 지목되는 설탕을 먹으면서 살을 빼는 방법이 있다고 과학 전문 블로그 ‘사이언티픽 블로깅(www.scientificblogging.com)’이 9일 보도했다.
이는 앳킨슨 다이어트(일명 ‘황제 다이어트’) 등 식단에서 탄수화물을 배제하는 기존의 잘 알려진 다이어트 법과는 정반대의 방법이다. 인간은 기질적으로 설탕을 선호하며 인공 감미료는 천연 설탕이 주는 단맛과 같은 위상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설탕을 다이어트에서 완전히 배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이론에 따른 것이다.

 

영국 에든버러의 퀸 마거릿 대학 연구팀은 69명의 과체중 여성을 네 그룹을 나누어 12주 동안 각각 다른 다이어트 방법을 실천하도록 했다. 실험 대상 여성은 평균 연령 41세이며 체질량지수(BMI)는 평균 32였다. 세계보건기구(WHO) BMI 25~29를 과체중으로, 30 이상을 비만으로 정의하고 있다.

 

4개 그룹 중

▷첫 번째 그룹은 다이어트만을

▷두 번째 그룹은 운동

▷세 번째 그룹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하며

▷네 번째 그룹은 살을 빼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 것을 지시받았다.


다이어트는 매일 섭취하는 총 칼로리량을 줄이는 대신 식사는 고탄수화물 저지방으로, 총 섭취 칼로리의 55%를 탄수화물로, 35%를 지방에서 얻도록 했다.

특히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칼로리 중 10분의1은 설탕이 되도록 해 저지방 시리얼 바와 저지방 요구르트 등으로 설탕을 매회 20g씩 하루 2~4차례에 걸쳐 섭취하도록 했다.

 

3개월 뒤에 조사한 결과 이들 4개 그룹에서 체중 및 체지방과 콜레스테롤 감소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난 쪽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한 그룹, 즉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와 함께 하루 한 시간 가량 활발하게 걷는 운동을 병행한 이들이었다. 체중은 평균 4.7kg가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설탕이 들어간 고탄수화물 식사가 다이어트 식단과 운동을 더 하기 쉽도록 만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체중을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은 고탄수화물ㆍ저지방식과 활발한 육체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증거가 되는 것”라면서, 체중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설탕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
헤럴드생생뉴스   2007-07-10]

이문환 기자(mhlee@heraldm.com)

유럽역사로 본 고대 한국인

서양사람들이 연구해 1999.12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송한  그 유명한 로마를 멸망시킨 훈족에 관한 내용을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그 주인공을 지금의 korean으로 보고 있네요...서양 사람들이요읽어보면, 그 당시 로마와 고구려 중 누가 더 강했는가와 자신들의 문명의 시작인, 그리스문명을 세운 스키타이인의 출신에 대한 서양사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네요..

 

유럽방이지만 유럽의 역사가 누구의 영향으로 흘러왔는지 정도는 알고 있음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참고하시길..

 

The Huns and the forgotten Korean

 (훈족과 잊혀진 Korean)

 

(이 방송은 훈족이 현 한반도에서 그 이동을 시작함을 알리는 화살표와 함께 시작된다.)

Europeans called them "Huns". Originate ing From the main land of Korea, they invaded the Roman empire during the 4th century.

유럽인들은 그들을 "훈족(Huns)"이라고 불렀다. 본국 고려(Korea; 고구려의 준말) 땅에서 일어난 그들은 4세기 중에 로마 제국을 쳐들어왔다.

 

Ancient Greeks historian recorded them Scytians, and later European called them Mongols.

고대 그리스 역사가는 그들을 스키타이인(Scythians)이라고 기록했으며 그 뒤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몽골인이라고 불렀다.

 

Around early 4th century, the temperature fell lower than usual for many years in far East Asia. It caused grains not to ripen, grazing grass land for animals was scarce.

4세기 초 무렵, 극동아시아에서는 수년동안 기온이 평시보다 떨어지는 이상기온현상이 발생하였는데, 그로 인해 곡식은 영글지 못하고 동물들에게 풀을 뜯어 먹일 수 있는 땅은 부족하였다.

 

For these reasons a large number of semi-nomadic tribes left from what is known today as the Korean mainland to Eastern Manchuria.

이런 이유로 인해 상당수의 반()유목 종족은 오늘날 Korea라고 알려져 있는 한국본토에서 만주 동부로 떠나게 되었다. (번역자 주: 이 부분은 영토면에서 사실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현재의 한국영토를 기준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Gathering other tribes along the way they proceeded to the Central Asiatic step. From there, the mass of tribes went westward.

그 길을 따라 이민족들을 규합하면서 그들은 중앙아시아쪽으로 발걸음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종족 대부분은 서쪽으로 향했다.

 

Around AD 370 these nomadic people arrived upon the Horizon of the Roman empire. They established a kingdom along the Danube, on the prairies that are present day Hungary.

서기 370년경 이 방랑민들은 로마제국 국경선에 도착하여 다뉴브 강(독일 남서부에서 시작하여 동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감; 독일명 '도나우강')을 따라 현재는 헝가리 지역인 대초원위에 그들의 왕국을 세웠다.

 

About AD 443, Attila, the son of King Ruga assassinated his brother Bleda and united all the Hun tribes. He lead the warriors on-to ruthless and savage conquests; destroying anything in sight, looting and merciless killing of innocent people.

서기 443년 경, 루가왕의 아들 아틸라는 그의 형제 블레다를 암살하고 전() 훈족을 통일하였다. 그는 전사들을 이끌고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정복을 감행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약탈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살해하였다. (번역자 주; 완전히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니 이 점을 잘 참작하기 바람)

 

He conquered Germany, Eastern Europe and most of southeastern Europe.

그는 독일, 유럽 동부 및 유럽 남서부 일대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다.

 

The Huns were superior horseman and combined with their archery skills were the bane of the Romans ......,

훈족은 기마술(말타기)에 능한 이들로 궁술 또한 겸비하였는데 그것은 로마인들을 파멸시킨 큰 원인이었다.(번역자 주: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것 같군요. 서양인들에게 있어 불멸의 영화인 '벤허'에 나오는 멋진 로마군인들이 우리 조상인 고구려 무사들에게 무참히 멸망 당했다는 이 기록이 우리가 아닌 서양인들의 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흥분케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They used a short, inverted bow made from few different materials glued together. An iron arrow head was able to pierce any European armor.

그들은 서로 강하게 접착된 다른 재료들을 가지고 제작된 짧은 역궁(逆弓; 맥궁!)을 사용하였으며, 쇠로 된 화살촉은 유럽군인들의 어떤 철갑옷도 관통시킬 수 있었다.

 

Their horses were short in height, but had speed and endurance, they were also agile and smart.

그들의 말은 키가 작았지만 빠른 속도와 강한 지구력이 있었으며, 그들 또한 동작이 민첩하고 영민하기 짝이 없었다.

 

Hun warriors, while twisting their upper body, were able to shoot arrows behind them while their horses were running forward (referring picture).

훈족 전사들은 말이 전방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틀면서 그들 뒤편에 있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쏠 수 있었다 (그림 참조요). (번역자 주: '그림 참조요'의 그림은 현 중국 집안현 무용총 주실 서벽의 수렵도에 나오는 고구려 기마궁병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함. /// Orullee Han님의 주; 고구려 기마병 그림은 집안현 그림으로, 다큐에 나오는 인물들의 복장과 거의 같습니다.)

 

When Atilla was young, his father Ruga exchanged his son with a young son of a prominent Roman family , his name was Aetius.

아틸라가 어렸을 때 그의 부친 루가는 자신의 아들을 한 유명한 로마 가문의 어린 아들, 즉 그 이름이 Aetius(Orullee Han님의 주; 아틸라의 친구이기도 하며 서로 상대방의 전술을 잘알며 내 기억이 정확치않으나 로마 왕실의 왕자인지도 모르겠읍니다)라고 하는 아이와 바꾸었다.

 

For ten years Atilla was educated in the Roman court vise versa Aetius from the Hun kingdom. Atilla was probably the first western educated Mongol in its history.

십 년간 아틸라는 로마 왕실에서 교육을 받았고 반대로 Aetius는 훈족의 왕궁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틸라는 아마도 몽골족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서구 교육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번역자 주; 이 문장도 서양인의 입장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니 각별한 주의를 요함)

 

Later these 2 men would confront each other in Gaul (today's France), in 451. Atilla would go on to lose this battle and invaded Italy in 452 with Germanic tribes.

이들 두 사람은 후에 451년에 Gaul(오늘날의 프랑스)에서 서로 맞부딪히게 되는데, 아틸라는 계속해서 이 전투에 패배하게 되며, 452년에는 게르만족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침략하였다.(번역자 주; 주인공의 이름 '아틸라' '이탈리아'가 매우 흡사한 것이 주목됩니다.) -

 

;"서양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보면 이탈리아의 어원이 Atilla에서 AI로 바뀌어서 이탈리아의 어원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고 나와있음."

 

His army advanced to Venice (today's) and negotiated with a Roman

representative Pope Leo for 10 hours.

그의 군대는 오늘날의 베니스로 진격하여 로마 대표 교황 Leo와 장장 10시간 동안 협상을 벌였다.

 

All the while on horse back, Atilla received tribute from Rome, and would thereafter retreat from Italy. Pope Leo received the title "The great" from the church for his successful negotiations with Atilla.

말 위에서의 장시간 협상 공로로, 아틸라는 로마로부터 공물을 받았으며 그 후 이탈리아로부터 회군하게 된다. 교황 레오는 아틸라와의 이 성공적인 협상으로 인해 교회로부터 "대제(The great)"라는 칭호를 받았다.

 

Atilla married to a German princess, Ideco in AD 453. After his wedding celebration he died that wedding night, possibly from alcohol poisoning.

아틸라는 453년에 독일공주 Ideco와 결혼을 하였다. 그는 불행히도 결혼식 날 밤에 죽게 되는데 아마도 그의 사인은 주독(酒毒)인 듯 하다.

 

His people dammed the Danube river and buried him in the middle of the river. They opened the dam for no on-e, so that none could ever find his grave.

그의 백성들은 다른 이들이 묘지를 찾지 못하도록 다뉴브강을 둑으로 막았으며, 시신을 강 중앙부에 매장하였다. 그들은 그 댐을 어떤 이에게도 오픈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 그 누구도 그의 무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After his death, the Hun kingdom crumbled and his people scattered from the Europe. He would be known as "the scourge of god" by the Roman Empire because of his cruel acts.

그가 죽은 후 훈(Hun)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그의 백성들 또한 유럽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살아생전 잔인한 행위로 인해 그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의 천벌"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The Huns left a number of legacies in Europe especially the Chateau area of France, all children born there have a blue round mark in their hip as the Mongolians do today. The country of Hungary got its name from the Huns, to commemorate the Hun Kingdom.

훈족은 유럽에, 특히 프랑스 Chateau 지역에 많은 유산을 남겼으며,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어린아이들은 엉덩이 부위에 오늘날 몽골인들과 동일한 파란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다. 헝가리라는 국명은 훈 왕국을 기념하기 위해 Huns에서 비롯된 것이다.

 

During the world war ll allied forces refer to Germans as Hun because of their relationship with Huns in the 4th and 5th centuries. Funeral cultures of Europe are also deeply influenced from the Hun.

세계 제 2차대전 기간 중 연합군은 역사적으로 독일인들의 4세기, 5세기에 훈족과의 관련성 때문에 독일인들을 훈족으로 부른다. 유럽의 장례문화 역시 훈족으로부터 깊이 영향받은 것이다.

 

    아틸라는 독일에서는 동양에서 온 정복자로 너무 유명해 다 알고, 식당까지 있단다. 이걸 읽고 왜, 유달리 유럽국가 중 독일만이 그토록 한국에 대해 칭찬일색의 기사를 쓰는지와서양국가 중에서 유달리 독일 만이 동양의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등에 관심이 높은지. 전쟁 후, 한국인 광부와 간호사를 받아 줬는지.. 대충 감이 간다. 독일인의 가슴 저편에는  동아시아 기원의 훈족의 후예라고 생각하는게 여전히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봤다.

-참고사항-

칸족을 헌으로 발음했지요. 태양이 순이 아니라 선인 것 처럼요.

고구려도 원래 발음이 칸가리...  나라 혹은 부족이라는 뜻입니다.

= 크다  가리 = 민족, 나라

헝가리도 마찬가지죠큰나라...  바로 헝가리가 고구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헌족이 로마를 망하게 한 후에도 동유럽에 마쟈르족이 자리잡죠.

이 마쟈르족이 바로 말갈족입니다고구려의 구성민족이죠.

말갈은 그냥 한국식 한자음이고요중국어에서는 한국식 한자음에서 보는 ㄹ 받침을 제거 해야 합니다. 몽골도 ㄹ 받침이 중국어표기에서 없어져서 몽고라고 쓰지요.

 

고대사에 대한 많은 학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많은 역사서가 일본에 의해 사라졌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일본이 훔쳐간, 숨겨져 있는 수많은 우리역사서를 찾는다면 …


글은 http://blog.empas.com/wukim2000/17408613에서 퍼옴